
이가림
까마득한 높이에서
빗방울들이 수직으로 떨어진다
죽음조차 두렵지 않다는 듯
해맑은 얼굴로
떨어진다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산산조각 제 몸을 땅에 바친다
아까울 것 하나 없는 운명이라는 듯
제 몸을 바친다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
모여서
더 이상 갈라서지지 않는
하나의 무리가 되어
나아갈 제 길을 스스로 만든다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홈통을 타고 흘러내리는
이 조그만 것들의 가느다란 소리가
꽉 막힌 하수구를 뚫고 둑을 무너뜨리고
콘크리트 장벽을 허물게 되는 것을
하나뿐인 제 몸을 내던져
살갗과 살갗 서로 부비는
저 빛 머금은 눈물 같은
목숨들의 발걸음!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죽음도 즐거운 듯 해맑은 얼굴로 떨어진다.
운명이라는 듯 주저함이 없이 땅에 조그마한 몸을 맡긴다.
살아서는 빗방울들은 떨어져 있었으나
죽어서 낮은데로 흘러 흘러 모두 하나되어 길을 만든다.
빗방울은 작은 몸을 던지고 나서야 모두 하나되어 큰 물길이 된다.
이런 물길을 만들고 나서야 장애가 되었던 둑을 무너뜨린다.
하나뿐인 작은 자신의 몸을 던짐으로
장벽을 무너뜨리는 큰 물길이 가능했던 것 이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이런 빗방울인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힘을 합쳐 큰 물길이 되고 나서야 장벽을 허무는 예를 무수히 보아왔다
장벽을 허무는 방법과 그 정당성을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다.
비는 무거워서
가벼워 지려고 떨어진단다.
산산히 부숴지려고....
삶의 시원(始源)은 빗물이 자유롭게 낙하하는데서 시작된다.
수직으로 떨어지던 나의 빗방울.
끝없는 추락 끝에 빗방울은 그렇게 죽어간다.
그 위로 누군가의 발자욱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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