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곰팡이 꽃 - 하 성란
런앤힛
2011. 7. 4. 18:55

곰팡이꽃이라고?
균사체인 곰팡이에게 꽃이 핀다고?
여기서 말하는 꽃은 그런 의미가 아니겠지.
아마도 열악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가치 없는 그 어떤 것에
꽃과 같은 숨은 진실이 존재한다는 의미겠지.
이렇게 상상해보며 읽어 본 곰팡이꽃
이 글에서 곰팡이꽃은
"녹차의 티백 찌꺼기와 두꺼운 오렌지 껍질, 다이어트 코카콜라. 모두 다 저열량의 음식들뿐이다.
돌돌 말린 비닐팩을 들어낸다. 미모사향의 섬유 유연제다.
미끌미끌하게 썩은 밥풀들이 달라붙어 있지만
시큼한 악취 가운데서도 비닐팩에서는 상큼한 향기가 난다.
남자가 복도에서 맡았던 그 냄새다.
쓰레기 봉투 맨 밑바닥에 손도 대지 않은 생크림 케이크가 문드러져 있다.
하얀 우윳빛 생크림이 군데군데 벗겨진 사이로
포도 시럽이 잔뜩 발린 삼단 케이크가 드러나 있다.
그 위에 하늘하늘하게 곰팡이꽃이 피어 있다."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문체나 사용하는 표현들이 모두 여성적이고 섬세하다.
생크림 케익, 미모사향,코발트색 남방, 가실가실한 솜털,새록새록, 양날개형 패드,....
꼭 여자들만이 쓸 수있는 표현은 아니지만, 단어들이 모두 내 취향과 맞는 것 같다.
단편이라서 아주 짧은 순간 빨려들듯이 읽었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은 이 소설에는 그 누구에게도 이름이 없다.
남자, 사내, 그 여자, 후배,507호 여자,수리공, 부녀회 회원, ..이런 식으로
바쁜 현대 사회에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의 느낌처럼,
등장 인물을 묘사 한것 같다.
508호에 사는 "남자"가 이 글의 시선의 주인공이다.
남자의 시선을 따라, 모든 것들이 전개된다.
남자는 나란히 붙은 507호에 사는 여자의 쓰레기 봉투를 욕조에 풀어놓는다.
이 일의 시작은 아마도 오래전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인것 같다.
남자에게 '그 일'이란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 된 줄을 모르고
일반 봉지에 넣어 버린 쓰레기를 그가 살던 아파트 부녀회원들이
찾아가지고 오면서 일어난 일이다.
부녀회원들이 던진 쓰레기 봉투는 분명 자신의 것인데도 낯설었다.
그가 정성껏 또박또박 쓴 편지의 글씨체들도 낯설었다.
그리하여 그는 쓰레기 봉투를 뒤져 그 안에 든 진실을 차고자 하는 것이다.
90세대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쓰레기들을 일일이 뒤진 그는
100개가 넘는 쓰레기 봉투를 뒤지고 나서는 90세대 가구의 취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다.
'쓰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쓰레기야 말로 숨은 그림찾기의 모범 답안이다'
그는 쓰레기에서 나온 ,물품들과 전단지,청구서 등에 적힌 이름들과
쇼핑 목록등을 수첩에 일일이 적으며
그 사실들과 맞추기 위해 아파트 사람들의 삶을 꼼꼼히 관찰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진실들을 비로소 발견한다.
그 여자(남자가 사랑했으나 남자의 후배와 결혼한)의 쓰레기 봉투를 볼 수 있었더라면
남자는 그 여자의 성격과 취향에 대해 잘 알 수 있었을텐데
그랬다면 그여자가 코발트색의 와이셔츠를 좋아하고
깔끔한 옷차림의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그여자를 놓치지 않았을것인데.
어느 날 그 남자에게 507호에 사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내가 찾아 온다.
장미꽃 다발과 생크림 케익을 전해 달라는 그 사내는
507호 여자, 최지애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고 하소연 한다.
남자는 그 여자를 알지 못하지만 그 여자가 지나가고 난 후 남기는 은은한 향기를 맡고는
그 여자를 알고 싶다고 생각하고는 쓰레기를 뒤지기 시작한다.
쓰레기를 뒤지던 남자는 507호의 여자를 사랑한다던 그 사내보다
더 그여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생크림케익을 좋아한다고 하던 그 사내의 말과는 달리 최지애는 케익위에 얹은 과일만 빼먹고는
통채로 케익을 쓰레기봉투에 버려 그 케익 위에는 곰팡이가 하얗게 피어있다.
바다를 좋아한다던 그 사내의 말과는 달리 최지애는 혼자서
무궁화호 구례행 열차를 타고 산을 찾아 갔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어쩌면 그들의 결별이 생크림 케익에서 시작된것이지도 모른다.
여자는 남자가 사주는 생크림 케익을 먹어주는데 지쳤고,
지금은 다이어트 중이며
진실을 모르는 사내와 그 여자 사이에는 커져 버린 틈만 있을 뿐이다.
사내가 쓰레기를 볼 수만 있다면
이 모든 오해는 , 틈은 ,메꿀 수가 있을 텐데 하고 남자는 생각한다.
코발트 색깔의 와이셔츠 때문에 결혼했다던 그여자(남자가 사랑했던)가
자신의 남편(후배)이
" 젠장, 만날 그 여잔 코발트 색깔의 와이셔츠만 사들이는 거야.
이젠 코발트의 코자만 들어도 진저리가 쳐진다니까".
"자동판매기 앞에서 후배가 동료들에게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후배가 신입 여사원과 함께 레스또랑에서 나오는 것도 목격했다.
그 여자는 지금은 남편이 된 후배의 실체에 대해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그 사내도 최지애에 대해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호출기의 번호도 바꾸고, 홀연히 이사가버린 최지애의 사내와
풀숲에 던져진 돌하르방을 찾으며 남자가 하는 말
"도대체 알 수가 없다니까. 진실이란 것은 쓰레기 봉투 속에서 썩어가고 있으니 말야."
진실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진실이란 있기는 하는 걸까?
헤어지고 난 후에도 영원히 최지애의 진실을 알지 못하는 그 사내와 같이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통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단정 지어버리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남자가 최지애의 진실을 알았다고 해서 그 사내에게 말 할 수도 없고
또 남자는 최지애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므로
그 진실을 어떻게 전달 할 수 있단 말인가?
진실이란 정말 알기도, 찾기도 어렵고
또한 그 진실을 소통하기는 더욱 더 힘들다.
어렵게 찾은 진실들
진실의 소통에 필요한 방법들,그것들이 더욱 더 요원한 이 삶에
쓰레기를 뒤지는 남자의 노력 처럼
멈추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